<구글 애드센스> 경주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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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국립박물관

museum & exhibition/museum tour

by 안경쓴짤랑이 2023. 4. 1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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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다녀왔다. 오랜만에 다녀왔는데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분(?) 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경주역사유적지구길을 따라 걸으면 도착한다. 
경주역사유적지구길을 지나는 길에는 첨성대도 있으므로
잠깐 들러서 보고가자
주변에 튤립도 피어있어 아주 예쁘다

첨성대 주변 튤립밭

 
 지금부터 국립경주박물관 관람후기 시작~!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올릴 수 있는 것이 한정되서

기억에 남는 것 위주로 올린다. 

오리모형토기(鴨形土器)

신라와 가야 지역이 있는 낙동강 유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토기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새가 죽은 사람을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고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이대조우송사 기의욕사사자비양)"

큰 새의 깃털로 장례를 치르는데, 이는 죽은 자가 날아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함

이라는 기록이 있어 뒷받침해준다. 

대부분 암,수 한 쌍으로 출토되고 물이 나오는 구멍(注口)이 있어 술을 따르는 

술이나 물을 따르는 주전자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출처: 노컷뉴스]

 

 

 

경주 사라리 130호 

아직 사로국에서 신라가 되기 전의 고분이다. 

목관을 썼기 때문에 널무덤(木棺墓)이라도 부른다.

주변고분보다 크기가 크고 부장품도 많아

지역 수장급 인물의 무덤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목관 내에 가느다랗고 길고 납작한 철이 70매가 매장되어 있다. 

철이 보급되던 시기에는 철은 매우 귀한 물질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교역물품 또는 화폐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호형대구(호랑이 모양 장식)가 발견되었는데 영천 어은동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다.

 

이 고분의 발견에는중요한 의의가 있다.

 

첫 번째 영천 어은동의 것과 유사한 호형대구는

 1세기대에 한국식동검의 전통적인 청동기 문화와 발달된

철기 생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유력 집단이 대두되었음이 확인되는 바, 진

한(辰韓)·변한(弁韓) 소국(小國) 단계로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철 생산지의 확보와 교역을 통한 정치력의 확대를 보여준다. 

[출처 : 한국 미의 재발견-선사 유물과 유적]

 

경주 교동 출토 금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금관에 비하면 작고 장식도 적다. 

전형적인 신라 금관 '出'자 모양이 나오기 전의 시원적인 형태의 것으로 보이며 

크기가 작기 때문에 금령총 출토의 금관처럼 어린아이의 것일 가능성도 있다. 

 

 

경주 용강동 고분 출토 토용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출토된 여인 모양의 토용이다. 

용강동 고분에서는 여인 모양의 토용 다수와 함께

남성 모양의 토용도 다수 발견되었는데

남성 모양의 토용은 경주 괘릉(원성왕릉)에 서있는 무인상과 흡사 비슷하다. 

여인 모양의 토용은 당시 당나라의 의상과 비슷하다. 

 

 토용은 무덤 속에 시신과 함께 묻은 부장품으로 죽은 뒤에도

무덤의 주인공을 돌볼 사람을 인물상으로 만든 것으로

무덤의 주인공과 함께 노비 등 산사람을 묻는

순장제도(殉葬制度)가 금지된 후에 이루어졌다.

삼국사기 지증왕 3년조 '순장을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부터 순장이 사라지고 인물토용을 부장품으로 묻었다.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신라의 미소'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의 미소로 유명한 얼굴무늬 수막새이다.

수막새는 목조건축에서 기왓골의 끝에 사용되었던 기와를 말한다. 

1972년 이 수막새의 소장자가 국립경주박물관에 직접 기증한 것이다. 

기와의 종류_출처: 우리문화숨결 홈페이지

일제강점기 때 경주의 사정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하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1970년 발굴을 통해 '영묘지사' 또는 '대영명사조와' 라는

글이 새긴 기와가 발견됨으로써 출토지를 영묘사로 보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통일신라시기의 수막새는 보통 화려한 연화문을 많이 사용했지만 

얼굴무늬 수막새는 독특한 경우이다. 

틀에 찍은 것이 아닌 손으로 빚어 만들었기 때문에

얼굴의 표현이 비대칭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생동감있는 모습이 되었다. 

 

기와의 장식은 건물의 위엄을 높이고 안전을 비는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얼굴무늬 또한 재해를 방지하고 사악한 기운을 막기위한 주술적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신라천년서고

SNS에서 핫한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

월지관 뒤편에 있다. 

마감시간이 촉박하게 가서 자세히 둘러보지는 못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발행한 도록 뿐만아니라

다른 박물관 발행의 도록도 많이 있고 

특히 신라 역사와 유물에 관한 서적이 많이 있었다. 

시간을 좀 더 넉넉하게 잡고 갔다면 

얇은 책 하나 정도는 읽을 수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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