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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자체의 역사가 긴 만큼 중요한 전시품들이 많다.
그래서 지난 글에 이어 몇 가지를 더 추가해보았다.
관람안내
월~금 : 10:00시~18:00
토/일/공휴일 : 10:00~19:00
매월 마지막 수요일 /3~12월 매주 토요일 : 10:00~21:00
사물함 : 신라역사관 계단 아래 / 요금 무료 / 셀프,비밀번호 지정가능
금관총 출토 유물부터 시작하겠다.
금관총 (노서리 제128호분)은 1921년 가옥 공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광복 후, 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하고 보호하고 있다.
금관총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고분에서 금관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제허리띠와 금관이다.
금관은 '出'자 모양이며 뒤 쪽 좌우에 사슴뿔 장식이 있다. (사진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많은 비취색 곡옥이 달려있다.
함께 발견된 금제 관모와 금제 관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금제 허리띠는 고구려에도 유사한 것이 있어 신라의 금제 허리띠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신라 금제 허리띠의 연원을 알게한다.
금관총의 것은 황남대총 북분의 것과 유사해 비교된다.
신라의 무덤 뿐만아니라 고대의 무덤은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무덤의 주인을 둘러싼 학술적 논쟁(예.황남대총 남분 피장자)도 있을만큼
무덤의 실제 주인을 알아내기란 힘들다.
1921년 당시 세 점의 고리자루 큰 칼이 발견되었다.
이 후 2013년 보존처리과정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이것을 계기로 2015년 다시 실시한 재발굴에서
두 번째 고리자루 큰칼의 끝장식을 발견했다.
여기에서 '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지막 고리자루 큰칼에서도
'이사지왕'을 뜻하는 글자가 확인되었다.
'이사지왕'이 실제로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금관총의 주인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있다.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비석이다.
육각형 모양의 기둥이고 나머지 다섯 면에는 해서체로 기록이 새겨져 있지만
마모가 심해 읽기가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마모되기 전에 비문의 내용을 탁본한 것이 여러 책에 실려있고
석당기(石幢記)를 목판에 새긴 《흥린군신각금생서(興隣君新刻金生書》《원화첩(元和帖)》이 전하여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법흥왕이 백성들을 위하여 불법(佛法)을 일으키려고 하자 이차돈이 고의로 잘못을 범한 것으로 꾸며 자신의 목을 치게 하여 순교한 일, 그의 목을 베자 목에서 흰 우유(白乳)가 한 마장이나 솟구치면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땅이 흔들린 일,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치르고 사당을 세운 일 등을 묘사하고 있다.
[출처: 한국사전연구사_한국불교미술대전, 두산백과 두피디아]
경주시 백률사에 있던 것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긴 것이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세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온갖 번뇌를 없애주고
나아가 무지(無智)의 병까지 고쳐준다는 여래이다.
약사여래상은 손에 약단지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률사의 약사여래는 두 손이 없어졌지만
오른손은 위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에는 약그릇이나 구슬(보주)을 들고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월지관(구.안압지관)
월지관에 전시되어 있는 청자편과 백자편이다.
밑바닥의 굽모양이 햇무리 모양을 하고 있다.
해무리굽은 가운데는 둥근 해를, 그 주변이 둥글고 두툼한 띠가 있는
햇무리 형태를 하고 있는 도자기의 굽을 말한다.
7세기 중국 저장성(浙江省) 월주요(越州窯)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여,
9~10세기경 우리나라 초기 청자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 출처:우리말샘(국립국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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