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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관람을 끝내고 들른 곳이었다.
예전에 왔었을 땐
시립박물관말고는 다른 전시관은 들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기념관까지 둘러보았다.
율곡 이이와 그의 집안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파주의 자운서원에도 율곡과 관련된 유적지가 있다.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 24
파주에 있는 율곡이이유적지에는 율곡과
그의 모친인 신사임당의 묘가 있다.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든 자운서원이 있다.
자운서원은 율곡 이이를 기리기 위해
광해군 때 지어졌다.
효종 때 사액서원이 되었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쳘폐되고 만다.
율곡기념관은 옥산 이우의
후손인 이장희 선생님이
신사임당 초충도를 기증하면서
1965년에 오죽헌 앞뜰에 지었다.
197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이창용 현 한국은행 총재가 신사임당과 그 후손의 유물을
기증함에 따라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전시관에는 신사임당의 작품 뿐만아니라
신사임당의 자녀인
이이, 이매창, 이우의 작품과
이우의 장인 황기로의 작품
그리고 덕수 이씨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분재기는 양반가의 재산 상속과 분배를 기록한 문서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불분명하지만
가장 오래된 분재기는 고려 말에 만들어진 것이다.
상속과 분배의 대상은
가옥, 토지, 노비, 가재도구 등이었으며
분재기를 작성하는 목적은
조상의 유산이 혈족 이외의
타인에게 전계(傳係)되는 것과
상속 및 분배 뒤의 논란과
이의를 방지하는 데 있다.
분재기는 상속의 시기와 방법에 따라
화회문기·분급문기·깃부문기[衿付文記]·
별급문기(別給文記)·허여문기로 나누어지는데
용인 이씨가 작성한 이씨분재기는
살아있을 적에 작성한
분급문기이다.
이씨분재기는 신사임당의 모친인 용인 이씨가
다섯 딸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다섯 딸들에 이어 손자인 이이와 권처균에게도
재산이 분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전기에서 중기까지는
균등한 재산분배가 이루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씨분재기는 조선시대 재산상속 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글씨이다.
그림만 잘 그렸던 것이 아니라
서예에도 능했다.
흔하게 보는 글자체가 아니라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몇 개 없었다.
서예에는 문외한이라서 감흥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전서체는 한자의 대표적인 다섯 글씨체 중에서
가장 먼저 생긴 글씨체이다.
대전과 소전이 있다.
대전은 동주시대에 진나라의 서체를 가리키고
소전은 시황제의 통일 후 신하 이사에게 명령해
대전을 간략하게 만든 글자체이다.
초서는 전서, 예서 등의 글자체의
자획을 생략해 흘림체로 쓴 글자체이다.
똑같이 흘림체이지만 행서체가 있는데
행서보다 생략과 흘림이 심해
실용적이지 않다.
대신에 예술적 서체로서의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
이우는 신사임당의 아들이다.
율곡 이이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우 또한 그림과 서예에 능했다.
그림은 어머니 신사임당의 화풍을 따랐다.
또한 이우의 장인은 황기로인데
황기로는 이우의 초서체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황기로는 슬하에 딸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의 사후 그의 작품들은
사위인 덕수 이씨가에 유품과 가산이 전해졌으며
황기로의 제사는
덕수이씨 옥산공파에서 현재까지 모시고 있다.
사진은 찍지않았지만
전시관에는 더 많은 작품들이 있다.
이이가 지은 저서,
이매창의 작품,
이우와 황기로의 작품을 더 많이 볼 수있다.
또한 덕수이씨와 관련된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어
알차게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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