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드센스> 안동 가볼만 한 곳_ 안동 하회마을 방문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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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가볼만 한 곳_ 안동 하회마을 방문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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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쓴짤랑이 2024. 1. 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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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안동하회마을 방문후기

 

 

극심한 추위가 오기 전에 들른 안동하회마을. 

좋았다 안 좋았다 변덕이 심한 날씨였다. 

안동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문이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있는 곳이다. 

 

안동하회마을은 바로 차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매표소로 오는 구조다. 

매표소에서 하회마을까지는 2~3분 정도 걸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커다란 비석이 서있다.

사실..이건 유네스코에 지정된 유적에는

어딜가나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회마을 초입에서 본 한옥대문과 담장

잘 정돈된 수목과 담장이 정갈하고 멋지다. 

몇 몇 주요 전각을 제외하고 

주민들이 사는 곳은 대문으로 굳게 닫혀있다. 

 

 

한옥담장길

조용하고 걷기 좋았다.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킨 삼성당 나무 

소원을 써서 묶어보았다. 

 

 

서애 류성룡이 살았던 충효당. 

류성룡이 낙향한 후에 살았던 곳인데

사후에 자손들이 사랑채를 확장해서 중수했다고 한다. 

당호가 '충효당(忠孝堂)'인 것은 

서애 선생이 임종 전에 '충과 효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전서체로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 현판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충효당 뒷 쪽에는 

서애 선생과 관련된 문화재를

전시한 영모각이 있다.

사진은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지은 '영모록' 초본이다. 

풍산 류씨의 계보를 정리한 것이다. 

 

 

서애 선생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저서인 

'징비록( 懲毖錄 )'이다. 

징비는 시경의 

'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원인과 그 경과를 자세히 기록했으며 

서애 선생이 벼슬을 물러난 뒤에 지었다. 

1695년 (숙종 21)에 일본의 야마토야에서 중간되었으며 

1712년(숙종 38년)에 책의 유출을 우려해 수출금지령을 내렸다. 

임진왜란 때의 일들이 고스란히 적혀있으므로 

임진왜란 연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문학적으로도 중요한데 

난중일기(이순신), 한중록(혜경궁홍씨)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기록문학 중 하나이다. 

 

양오당 고택

서애 류성룡의 증손자 류만하가

분가할 때 지은 집이라고 한다.

나중에 류만하의 아들인 류후장이 증축한 것이라고 한다. 

대문 앞에는 작은 담이 세워져있는데 

바깥에서 안채를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나가다가 들른 어느 초가집

꽃으로 낮은 담장을 만들었는데 예뻐서 찍어보았다. 

작은 소품들을 파는 곳 같았다. 

 

하회마을은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이 '回'모양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이 물 위에 떠있는 연꽃과 같아서 길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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