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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생가터에서
택시를 타고 간 곳은
오죽헌이었다.
이미 학과 답사로 두 번 정도는 가본 곳이었다.
그 때와는 비교해서
그대로 인 것도 있지만 변한 부분도 있었다.
강릉 오죽헌에는
오죽헌 뿐만아니라 강릉시립박물관,
율곡기념관 등이 있고
모자가 각 각 천 원권 지폐, 오만 원권 지폐에
올라가있는만큼
화폐전시관도 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강릉 오죽헌은 우리나라 주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이며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의 별당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은 검은 대나무가
집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도 오죽헌 주변의 검은 대나무를 볼 수 있다.
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어머니이며
이이의 외조모인
용인 이씨가 외손자인 권처균에게
물려주었으며
이 때부터 강릉 오죽헌의 소유권이
안동 권씨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 후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인해
소유권이 강릉시로 넘어오게 된다.
용인 이씨가 손자 권처균을 비롯해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작성한 분재기는
율곡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시대 초,중기 사대부가의
재산상속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조선 중기만 하더라도 여성의 지위가
어느정도 보장되었음을 이 분재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율곡기념관 관람 후기 보러가기 (이씨분재기를 확인하면 된다.)
▼
율곡 이이가 어렸을 적부터 있었다던
커다란 배롱나무다.
나무의 나이가 600살이라고 한다.
이이가 어렸을 적 보던 나무를
지금도 보고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꽃이 다 지고 없었지만
꽃이 핀 모습은 매우 예뻤을 것 같다.
문성사
대학자 이이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이다.
정조 12년(1788)에 지어진 후
계속 중수를 하다가 1975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지어졌다.
문성사라는 이름은 이이 선생의 시호인
'문성'에서 따온 이름이다.
문성사 왼쪽에는 별당인 오죽헌이 위치해 있다.
'ㅡ'자형의 건물이다.
조선 초기에 지어졌고
원형을 잘 보존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건물이다.
오른쪽 마루방은
이이 선생이 태어난 오죽헌의 몽룡실(夢龍室)이다.
신사임당은 이이를 낳기 전에 태몽을 꾸었는데
꿈에서 검은 용이 나왔기 때문에
이이 선생의 아명은 현룡(見龍)이었다.
별당이름이 몽룡실인 것도
'꿈에서 용을 보았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왼쪽의 방은 이이가 여섯 살까지 살면서
공부를 했던 방이다.
이이 선생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본가가 있는 경기도 파주로 이주한다.
어렸을 적부터 영특했는데
과거에 아홉 번이나 급제해
'구도장원공'이라고 불렸다.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선생의 나이 16세에 돌아가시고 만다.
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르고 난 후에는
금강산으로 올라가
노장사상과 불교를 공부하기도 한다.
오죽헌의 안채와 사랑채이다.
'호해정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던 곳이고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생활하던 공간이다.
기둥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적혀있는
주련이 걸려있다.
포토존에서 찍은 오죽헌의 모습
오천 원권 지폐에 실려있는 각도에서 찍었다.
날씨가 좋았어서 사진이 예쁘게 잘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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