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드센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 관람후기_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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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 관람후기_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2

museum & exhibition/museum tour

by 안경쓴짤랑이 2024. 5. 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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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시 관람후기_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2

 

포스팅이 길어질 것 같아서 

두 개로 나누었다.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1 관람후기

 ▼

https://lucy2371.tistory.com/211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 관람후기_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1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_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지난 3월에 다녀온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를관람한 후기를 포스팅하려 한다. 이번 서울여행

lucy2371.tistory.com

 

 

사진은 부처의 사리를 담는 단지와 

스투파에서 출토된 사리와 보석들이다. 

보석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꺼낼 때 

넣은 것이다. 

사리와 같이 귀한 것으로 취급한다.

 

사리는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물건이다.

그렇다면 사리는 어떤 것일까? 

사리는 참된 수행을 거친 자가 열반에 든 뒤 

그 시신에서 나오는 구슬모양의 유골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시신'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는 유신(有身)·신골(身骨)이라고도 한다.

형태에 따라 전신사리와 쇄신사리로 나눌 수 있다. 

신체 자체를 전신사리라고 하며 

전신사리를 다비(화장)한 뒤의 사리를 쇄신사리라고 한다.    

석가모니의 사리 뿐만 아니라 

고승의 사리도 귀하게 여겨졌다. 

고승의 사리는 '승사리'라고 하며 

부도라고 하는 불탑과는 다른형태로 봉안했다. 

 

스투파의 구조와 기본이 아름다운 스투파

 

스투파가 조각되어 있는 석판이다.

석판 속의 스투파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스투파이다. 

무덤처럼 돔을 높이 쌓아 올리고 주변에 벽을 둘러 장식한다.

그리고 돔 가장 윗부분에는 햇빛 가리개를 세운다.

 세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도형인 네모와

동그라미로 이루어진 단순한 모양이다.  

석판은 사타바하나 왕조의 중심지였던

'둘리캇타'라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석판같은 그림으로 볼 땐 규모가 짐작가지 않았다.

그 후에 인도에 실제로 남아있는

스투파의 모습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산치의 대스투파를 보게 되었는데

큰 규모로 지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원전 2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석판이다. 

거대한 수레바퀴가 태양같은 모습으로 세워져있고 

사람들이 그 주위에서 바퀴를 향해 절을 하고 있다. 

수레바퀴를 새긴 석판은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이 세운 

돌기둥에 얹혀져 있다고 한다. 

 

그림에서 수레바퀴는 영원히 이어질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것을 '법륜'이라고 한다. 

마우리아 왕조의 왕 아소카 왕은 

불교의 가르침에 입각한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려고 하였다. 

이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왕

즉, 정법(다르마)의 바퀴를 굴리는 왕이라고 하여 

아소카 왕이 '전륜성왕'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삼국의 정치, 문화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준다. 

특히 '전륜성왕'의 이념은

불교의 신성함에 기대어

왕권을 강화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백제의 성왕이라는 명칭이 '전륜성왕'과

동일시한데서 비롯되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많다. )

염소로 태어난 전생이야기와 사리 쟁탈전

 

최종 전시실은 석가모니(부처)의 전생과 일생

그리고 수련에서 유혹을 이겨내고 

깨달음을 얻는 부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키오스크로 확대해서 자세히 볼 수 있었고 

전시내용도 더 잘 이해되었다.

무엇보다 화질이 좋았다. 

그리고 어떤 내용의 이야기인지 쉽게 풀어놓아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전시의 시작은 석가의 전생을

이야기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석가의 전생을 '본생담(자카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석가는 출가 후 6년의 고행 끝에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짧은기간 동안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 것은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들은 석가가 이른 깨달음을 얻은 것을

전생에서 쌓은 공덕떄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당시 민간에 널리 알려져 있던 전설과

우화를 붓다의 전생으로 꾸며서 그들 나름대로의

합리화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위의 사진은 전생에 염소였을 때의 이야기다. 

제물로 바쳐지는 석가는 왕에게 

생명을 죽이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붓다의 전생이야기는 547가지가 있다. 

전생에서부터 계속된 석가의 고행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본생담은 

동남아 및 여러나라로 퍼지게 된다. 

중국에서는 700여편이 번역되었으며 

540년 경 페르시아에서도 번역되어 '아라비아나이트'비롯한 

유럽 여러나라의 속담, 동화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불탑이나 석굴 등의

불교미술을 중심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불교의 일화를 통해 

전세계가 알게모르게 서로 연관이 되어있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동서양의 교류가 근세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또한 기원전의 이토록 놀랍고

정교한 기술이 있었다는 것에 

새롭게 놀라게 된다.  

석가모니의 이번 생 이야기

 

스투파에 석가모니의 이야기가

장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석가모니의 이야기를 장식하는 방법도 변해간다.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 하나의 시간과 장소만이 표현된다. 

오른쪽에서 왼쪽 순으로 봐야한다. 

석가모니의 출가와

출가 이 후 마왕의 방해를 이겨내는 과정을 담았다. 

 

1 출가의 뜻을 밝히다

2 성을 나서다

3 마왕 깨달음을 방해하다

4 마왕의 딸이 유혹하다 

깨달은 직후부터 설법까지

 

세 칸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야기는 다섯 개이다. 

옆에 놓여진 키오스크로 확대하며 봤는데 

더 자세히 볼 수 있었고 

설명도 구체적이었다. 

그림을 확대하며 보니

섬세하게 하나하나 공들여져있어 

감탄하며 보았다. 

 

이야기는 맨 아래 왼쪽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그재그로 올라가서 

맨 위에서 끝난다. 

맨 위의 이야기는 사르나트의 녹야원에서 

첫 설법하는 모습이다. 

석가모니가 앉아있는 대좌아래에는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슴 두 마리가 양 옆에 앉아있다. 

 

도리천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고 내려오다

 

서기 3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석판이다. 

석가모니가 도리천에 있는 어머니

마야부인에게 불법을 전하고 내려오는 장면이다. 

석가모니를 수호하는 약샤, 마카라가 보이며 

스투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장식이 석판에 표현되어 있다. 

 

마야부인은 석가모니의 어머니이며 

룸비니라는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옆구리로 출산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출산 후 7일 만에 사망하여 도리천으로 갔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신라에서도 

마야부인이 있는데 

선덕여왕의 어머니이며 

진평왕의 왕비이다. 

법흥왕의 불교공인 이 후 

불교식 명칭을 본따 이름을 짓기도 한다. 

이것은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왕실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교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불심을 중심으로 민중이 뭉치게 해 

국난이 있을 때마다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 임진왜란(1592) 때까지 이어진다. 

 

도리천은 33천 가운데 수미산 꼭대기에 위치해

제석천이 머물고 있다는 이상세계를 말한다. 

제석천은 고대 인도의 천신 중 하나였다. 

부처의 감화를 입어 정법을 수하고 부처와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존재로 

성격이 바뀌었다. 

고려시대의 승려 대각국사 일연과 

제왕운기의 저자인 이승휴는 제석천을 

우리나라의 시조인 단군왕검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도리천)


도리천은 선덕여왕의 일화에도 나오는데 

삼국유사에서 선덕여왕은

'내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을 것이니

도리천에 장사지내라'는 말을 한다. 

신하들이 그 곳이 어디인지를 묻자

낭산의 남쪽봉우리라고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불상


인도의 넬라콘다팔리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서기 3세기에 만들어졌다. 

고대 사타바하나 지역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크고 완전하게 복구된 것 중 하나다. 

부처의 네 가지 상서로운 표시를 보여준다. 

이마에 있는 나선형 머리카락인 우르나

(백호, 지혜의 빛을 상징,

우리나라의 불상에서는 대개 수정이나 보석을 박는다.)

머리 전체에 있는시계 방향의 나선형 머리카락 

(불상의 나발에 해당)

두개골의 부종인 우신사(육계 또는 살상투, 지혜를 상징)

왕자인 시절에 착용했던 무거운

보석에 의해 팽창된 귓불 등이다. 

 

* 본문출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홈페이지 번역

* 부연설명은 (), 출처: 역사문화수첩, 그림으로 보는 우리의 문화유산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762014

 

Buddha | India, Nelakondapalli, Khammam district, Telangana | Ikshvaku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Use your arrow keys to navigate the tabs below, and your tab key to choose an item New Yor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ree & Serpent: Early Buddhist Art in India, 200 BCE–400 CE," July 17–November 13, 2023. National Museum of Korea. "Tree & Ser

www.metmuseum.org

 

 

동남부 인도에서 불상이 등장한 것은 

기원 후 2세기 말부터다. 

간다라와 마투라의 양식과 구별되는데 

대체로 입상이 많다. 

복장은 오른쪽어깨를 드러낸 형태이며 

소라 모양의 부처의 머리가 낮고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보통의 사람과 다름없는 체격인데 

남인도 불상의 큰 특징이다. 

 


 

현생에 치여 늦어버린 후기지만 

전시의 여운이 느껴졌다. 

늘 항상 공부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번 전시관람처럼 아쉬운 적이 없었던 것같다. 

익숙한 우리나라의 불상, 불화만 봐오다가 

고대 인도 초기 불교미술을 직접 보게 되어 새롭다. 

특히 우리나라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더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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