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드센스> 옛 백제의 왕성 위에 지어진 _한성백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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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백제의 왕성 위에 지어진 _한성백제박물관

museum & exhibition/museum tour

by 안경쓴짤랑이 2024. 6. 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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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성백제박물관

서울여행의 마지막으로 
팀홀튼 카페를 다녀온 뒤 
한성백제박물관을 갔다. 
진행하고 있는 특별전은 없었고 
상설전시만 관람했다. 

 

서울의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의 모습

 
백제 수도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다면 
한성기(서울), 웅진기(공주), 사비기(부여)로 나뉜다. 
현재 서울은 우리나라의 수도이며 
수도가 아니었던 시기에도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던 곳이다. 
 
한강을 통해 서해로 나가 
중국과 직접 교류가 가능했으며 
땅이 비옥도 농사도 잘되어 
자원이 풍부했다. 
그런 이유로
삼국시대부터 한강유역을 둘러싼 다툼이 치열했으며 
한강유역을 차지한 순서에 따라 
전성기를 맞는 시기도 달랐다. 
(백제 4c - 고구려 5c - 신라 6c)
 
삼국사기에는
백제건국 설화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복형제인 유리가 등장해 태자가 되자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  
새로운 땅에 터전을 마련한다. 
비류는 미추홀지역에 
온조는 한강 유역에 터를 잡는다.
 하지만 미추홀은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반대로 온조가 자리잡은
위례지역은 도읍이 안정되고
 살기가 좋았다. 
이것을 본 비류는
부끄러움과 후회로 죽고만다.
 
또 다른 설은 
소서노가 주몽과 결혼하기 전 
우태라는 사람과 혼인했는데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비류와 온조였다. 
고구려의 건국과정에서 
소서노의 공이 컸기 때문에 
동명왕은 그녀를 매우 아끼고 
비류와 온조를 친자식처럼 아꼈다고 한다. 
하지만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예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유리가

태자가 되어 왕위를 잇게 된다. 
비류는 동생 온조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떠날 것을 권유했고
온조는 이것을 받아들여 
남쪽으로 남하해 미추홀에

자리잡았다는 이야기다. 
(출처: 김부식,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나주 왕곡면 신포리 정촌고분 2호분 옹관

 
나주 정촌에서 발견된 옹관묘이다. 
옹관묘는 사람의 뼈를 세골하여 묻거나,
어린이나 유아와 같은 소아용으로 이용된
항아리 무덤을 가리킨다.
세계 각지에서 사용된 무덤 종류로서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본토와 남만주,
한국, 일본 등지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앙소문화 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한나라에 접어들면서
점차 소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확인되지만
청동기시대 송국리문화권 속에서
주로 발견되어 왔다.
초기철기시대에 들어서면 옹관묘는

두 개의 옹이 합체된 형식으로 

대체된다.
두 개의 옹을 옆으로 뉘어 구연부를 서로 맞대거나
삽입하는 형태가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단옹식도 있으며
평양 남경유적·광주 신창동유적 등지에서처럼
세 개의 옹을 덧댄 경우도 조사되고 있다.
 
원삼국시대에는

타날문토기가 사용되며 
경상도 일부지역에서는

와질토기가 사용되기도 한다. 
옹관묘의 안치방식은
비슷한 크기의 옹으로 합구시키거나
단옹의 합개식 등이 있다.
 
삼국시대로 들어서면서도
옹관묘의 사용은 계속되는데
특히 분구에 배장되거나
추가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피장자의 나이와 지위 등과 같은 성격을 짐작케 할 수 있다. 
(출처 : 한국고고학사전)

경당지구 우물에서 발견된 백제토기들

 

풍납토성 유적 내에 있는 

경당연립 재건축부지에서 발견된 

우물지에서 나온 토기들이다. 

우물 바닥에 4단의 목곽이 짜여져 있고

그 안에 토기 215점이 차곡차곡 매납되어있었다. 

 

시유도기

 

우물지에서 서쪽에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유구(196호 수혈)에서는 20개체 이상의 

시유도기가 수습되기도 했다. 

더불어 백제 전기 대옹들도 여러 점 나왔는데 

주변의 제사유구와 관련된 음식물 또는 

음료 등을 저장하기 위한 대형의

창고 시설로 추정된다고 한다. 

 

시유도기는 유약을 바른 도기이다. 

풍납토성에서 나온 도기들은

모두 중국제 도기들이다. 

백제토기와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있어 

백제토기의 연대를 결정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 

 

김포 운양동 출토 금귀걸이(복제품), 오른쪽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출처

 

김포의 운양동의 분묘군에서

발견된 금귀걸이다.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곳에서 나온 귀걸이와 

유사한 귀걸이가 중국 길림성 노하심과

통화시 왕팔발자묘군에서 

먼저 발견되었다.

학계에서는 완제품 형식의 귀걸이가 

전해졌을 것이라고 보고있다. 

(출처 : 한국고고학사전, 운양동 분묘군 이식) 

 

방사선무늬와 동전무늬 수막새

 

국립문화재연구원이 풍납토성에서 

발견한 수막새이다. 

수막새는 수키와 한쪽 끝에 붙여

둥글게 형태를 만들어

목조 건축 지붕의 기왓골 끝을

장식하는 기와로,

문양이 새겨지는 막새면과

테두리에 해당하는 주연부,

뒷면에 부착된 수키와로 나뉜다. 

 

백제의 기와는

낙랑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다. 

풍납토성, 몽촌토성 같은 중앙의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근처의 포천, 화성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수막새는 무늬가 없는 것도 있지만

초화문이나 동전무늬를 새긴 것이 많다. 

 

부안 죽막동 출토 백제토기들

 

부안 죽막동의 제사유적에서

발견된 토기들이다. 

죽막동 유적은 해신(海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4세기부터 현재까지 제사를 지낸다. 

백제와 가야의 각종 토기와 금속품,

중국제 도자기,

일본 고분시대의 돌로 만든 모형품 등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죽막동 일대가 

중국-서해안-남해안-일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  

 

제사를 지낸 주체는 토착세력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진

계층일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에서 중국제 도자기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제사의 주체가 단순한

토착세력이 아닌 것을 보여준다.  

(출처: 한국고고학사전, 죽막동 제사유적)

 

중국제 도자기는 백제 내에서도 

왕궁이나 고위급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이기 때문이다. 

백제 중앙정부에서 사여한 것이라면 

중앙에서도 이 지역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관리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해상교역을 통해 중앙도 무시하기 힘든 정도의 

부와 권력을 가진 토착세력에 대한 

회유책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용마산 보루에서 출토된 유물

 

아차산 보루군 일대 중 하나인

용마산 제2보루에서 발견된 유물들이다.

보루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을 말한다. 
주로 소규모 성곽을 말한다.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에 위치해있으며 
중랑천변 일대를 포함한 

한강 이북지역이 보이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용마산 2보루는 정상부 주변이

모두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유적의 외곽 부분에는 돌로 쌓은

축대 시설들이 여러 겹 설치되어 있으며,

정상부가 다른 유적들에 비해 좁아

건물을 정상부뿐만 아니라 경사면

아래쪽의 평탄면까지 활용하여 축조하는 등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가 대다수이다. 

특히 토기류는 거의 모든

고구려의 토기 기종이 발견된다.  

연대는 장수왕이 한강을 점령한 시기인 475년부터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이 재점령한 551년까지로 

다른 보루의 연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출처: 한국고고학사전)

 

 

통일 이 후의 한성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9주 5소경이라는 지방제도를 만들어 

지방을 다스렸다. 

9주 중 서울은 한주로 편제되었다. 

관할지역이 9주 중 가장 넓었고 

발해와 국경이 닿아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남천정과 골내근정 등 2개의 정이 설치되었다. 

 

한주에 있는 한강유역은 

중국과 바로 통할 수 있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주변에 많은 산성을 쌓았는데 

대표적으로 아차산성, 행주산성, 오두산성, 남한산성, 이성산성,

계양산성, 대모산성, 호암산성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대승을 거둔 곳이며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에 맞서 대항하던 곳이었다. 

 

옥외전시장

 

한성백제박물관 맨 위에 있는 옥외전시장이다. 

이 곳에서 롯데타워와 아차산을 볼 수 있다.  
아파트에 가려져 안 보이는 곳이 

풍납토성이고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이 몽촌토성이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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