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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간송미술관 관람후기 1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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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릴 사진이 많아서
후기를 두 개로 나누었다.
두 번째 후기의 시작은 풍속화부터이다.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풍속화가
전시되어있어선지 줄이 가장 길었다.
보기힘든만큼 사진을 많이 남기고 싶었지만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
놓친 부분이 많았다.
풍속화는 조선 후기에 갑자기 생긴 회화가 아니다.
이미 고구려 고분벽화에 주로 3세기에서 5세기 초에
조성되는 벽화고분에서
생활 풍속도가 다수 그려진 것을 알 수있다.
가장 크게 성행한 시기는 조선 후기였다.
조선 후기 풍속화는 숙종 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영조 전반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영조 후반기에서 정조 대에 가장 번성했다.
숙종,영조 연간에 윤두서, 조영석 등의
문인화가들이 서민풍속화의 단서를 열였다.
(출처: 이윤구,조우호, 미술실에서 미술관까지, 미진사)
대표적인 풍속화가로는 김홍도, 신윤복이 있으며 김홍도의 화풍은
김득신, 김양기, 김후신, 권용정 등에게 이어졌고
신윤복의 화풍은 유운홍, 유숙 등에게 이어졌다.
순조 대에도 이어졌던 풍속화는
19세기에 들어와 추사 김정희의 등장으로
문인화가 우세해지면서 쇠퇴하게 된다.
혜원 신윤복
산수화와 풍속화를 잘 그렸으며
또한 양반 관료들의 이중성과 위선을 풍자한 그림,
여성들의 생활상을 그린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어렸을 적 이름은 가권(可權)으로 뒤에 윤복으로 개명하였는데,
그의 본명이 가권(可權)으로 밝혀진 것은
그가 그린 유명한 미인도(간송미술관 소장)에서
신가권이라는 도서가 찍힌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1800년 정조 사후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그의 작품활동도 쇠퇴기에 접어든다.
신윤복의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이다.
남녀가 한밤중에 은밀히 만나는 장면을 그렸다.
교과서에서 자주봤던 그림인데
실물로 보니 반가웠다.
우연히 그림 속의 달의 모양과 위치로
그림이 제작된 연도를 추적하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림을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 같다.
위의 월하정인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그림 중 하나다.
고양이를 내쫓는 그림 속 남자의 표정이 사실같다.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어가면서
약올리는 듯한 모습이 재미있다.
제 2전시실에 미인도 하나만 전시되어 있다.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미인도 하나만 있어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윤복의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대구미술관 <조선회화특별전>에서 봤었던 기억이난다.
다소곳한 손모양과 풍성한 한복치마가 제일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는 시가 적혀 있고
시의 아래에는
'가권'이라는 주문방인이 찍혀있어
그의 어릴 적 이름이
'가권'이었음을 알 수있다.
잘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해진다.
(주문방인은 양각으로 만든 사각형 모양의 도장을 말한다. )
현재 심사정
마찬가지로 같은 전시에서
본 적이 있었던 그림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심사정에 대해 처음 알게되었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인물이라고만 알았는데
그에 대해 다룬 책을 읽고나서
괜히 마음이 먹먹해진 기억이 있다.
촉잔도권은 길이 8m에 달하는 그림이며
'촉'은 중국 사천성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죽기 1년 전에 그린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의 모든 화풍을 다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한 길이에도 놀라지만
봉우리 하나하나 섬세하고 생동감있게 그려내었다.
관념산수화임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그곳 경치를 실제로 보고 그린 듯 생생하다.
촉잔도권의 발문이다.
심사정에게 그림을 부탁한
심유진의 아들 심래영이 1798년에 썼다.
무자년(1768)에 완성된 그림을
심래영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무술년(1778)에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무오년(1798)에 다시 찾게 되었는데
이것을 기이하게 여겨 발문을 적었다고 한다.
촉잔도권의 시작부분이다.
시작부터 눈이 커지게 만들었다.
8m의 그림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놓은 듯하고
가지각색의 모양을 한 봉우리가
그려져 있어 화려하다.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정갈하기까지 하다.
간송 전형필이 촉잔도권을 구입하고
보수한지 10년이 지난 후에
오세창이 쓴 발문이다.
1948년에 쓰인 발문인데
그림이 그려지고
그림을 분실하고
그림을 다시 찾은 년도에
모두 '戊'자가 들어간 것이
그림을 더욱 신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 28년에
훈민정음의 창제목적,
자모글자 내용,
해설을 묶어 만든 책이다.
유일본이며 1940년에 간송 전형필이 수장한 것이다.
미인도가 있는 전시실 바로 옆에 있다.
미인도처럼
별도의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책만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훈민정음 해례본을 낭독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전시 막바지에 찍은 사진들이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배터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찍은 것이 없다.
19세기 문인화를 주도했던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난맹첩의 첫 번째 그림인
작설만산은 눈속에서
춘란이 무리지어 자라는 모습을 그렸다.
세외선향은 지초와 난초를 같이 그렸다.
지초는 영지 가리키는 말인데
불로초로 여겨진다.
난향은 군자의 고결함을 상징한다.
국향군자는 구도가 특이한 그림이다.
보통 난이 한 쪽에 치우치는 그림을 많이 봤었는데
중앙을 대칭을 가로지르는 것이
시원하면서도 뭔가 모를 안정감을 준다.
염화취실은 꽃이 지면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김정희가 제자 유명훈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음식에 관한
일을 관장했던 사옹원의 인장이다.
백자로 만들어졌고
사용흔적이 있다.
사자의 표정이 귀엽다.
뚜껑 위에 기린이 앉아있다.
기린의 모습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기린은 중국 전설 속에 나오는 상상속의 동물이다.
용과 말이 교미하여 생겨난 것으로,
수컷을 ‘기(麒)’, 암컷을 ‘린(麟)’이라고 한다.
기린은 모든 동물 중에서도 으뜸으로 간주하였으며,
성인(聖人)이 태어날 때 그 전조로 나타난다고 한다.
자애심이 가득하고
덕망이 높은 생물이라서
살아있는 것은 동물은 물론
식물이라도 먹지 않고
벌레와 풀을 밟지 않고 걷는다고 한다.
(출처 : 위키백과)
고려의 전형적인 형태의 매병이다.
매병은 매화꽃을 꽂는 화병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매병은 술·물 등의 액체를 담는 그릇으로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까지 사용되다 사라졌다.
청자와 백자로 만들어졌으며
특히 고려 청자매병은 뛰어난 작품이 많고 형태와 문양이 다양하다.
연꽃·모란·국화 무늬가 대표적이다.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교과서에서도 많이 본 이 매병에는
고려의 모든 기술이 다 부어 넣어진 듯한 생각이 든다.
잘록한 허리부분은 날렵해보이지만
윗부분의 곡선때문에 안정감있고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은은한 옥빛과도 가까워서
화려한 무늬가 많이 새겨져있어도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않았다.
고려청자는 보면 볼수록 색 때문이라도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어진다.
작고 아담한 병이지만
다양한 기법이 들어간 병이다.
특히 병에 새겨진 모란꽃은 '박지'라는 기법으로 새겨졌는데
'박지'는 그릇에 백토를 바르고
무늬가 되는 부분만 남겨
그 외의 부분을 긁어내는 방식이다.
분청사기 무늬 중 가장 뛰어난 조형성을 가졌다.
긁어낸 부분에는 철안료를 칠하는데 이것을
'철채'라고 부른다.
사진 속의 병은 녹색 안료를 칠한 것이라고 한다.
흰 모란무늬와 녹색 배경의 대비가 뚜렷하고
모란꽃의 모양이 간략화되어 있어
추상화같은 느낌도 든다.
전시의 마지막인 영상실이다.
산수화에 나오는 산수모양 의자에 앉아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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