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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집가의 초대_고려, 조선 자기만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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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는 말 그대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청자다.
중국 송대 월주요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12세기에 이르러 비색상감청자라고 불리는 아름답고 정교한 청자가 만들어진다.
상감은 표면에 무늬를 새긴 후 그 자국에 백토나 흑토를 메워 무늬를 새기는 기법이다.
이 시기의 청자는 모양이나 색, 무늬 등이 독보적으로 아름다워
동시대의 일본과 중국에서도 고려청자에 대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1231년 원의 침입으로 쇠퇴하다가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로 이어진다.
연꽃무늬가 음각된 청자 매병이다.
매병은 액체를 담아 사용하는 그릇이다.
'S'자로 내려오다가 아래쪽에서 살짝 벌어진 모양이다.
12세기 고려시대 청자 매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매병은 중국에서는 당, 송나라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인 12세기부터 만들어졌는데
조선 초기까지 만들어지다가 단순한 형태의 병과 항아리가 쓰이면서 사라진다.
고려시대의 청자 매병은 전라남도 강진과 부안에서
품질이 좋은 청자를 생산하는 가마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둥근 몸체를 앞뒤로 눌러 만든 편호이다.
편호는 몸통의 양면이 평평하게 눌린것이 특징이며 주로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졌다.
다양한 형태의 내용물을 담을 수 있었다.
몸체가 평평해서 벽에 기대어 두거나 편호끼리 서로 붙여두기에 편리했다.
이 사진의 편호는 윗부분은 구슬이 엮인 모양의 무늬가 있으며
아랫부분에는 겹연꽃무늬가 배치되어있다.
구슬무늬 아래에는 백로 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새겨져있다.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 위에 정선된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뒤에
유약을 씌워 환원염에서 구워진 자기를 말한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분장회청사기'를 줄인 말이다.
그릇에 백토를 분장하는 것은 중국 오대, 북송대 자주요에서 유행했던 기법이다.
주로 민간용기로 제작되었다.
조선의 백토 분장기법은 무늬를 나타내는 수단임과 동시에
백자로 이행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늬를 새기는데에는 여러가지 기법이 있다.
인화, 상감, 음각,박지, 철화, 귀얄, 덤벙 등이 있다.
이 중 박지는 배경은 긁어내고 무늬만 하얗게 남기는 기법이다.
철화는 백토로 분장한뒤 철사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붉은 빛을 띤다.
시간이 흐르면서 태토와 표면 분장상태가 백자화되어간다.
그러다 임진왜란의 발발(1592년)과 내부 사정으로 분청사기는 소멸한다.
귀얄 기법으로 분장한 후 철화 안료로 무늬를 새겼다.
몸통 가운데에 고사리형의 넝쿨무늬를 장식하였다.
충남 공주 학봉리 계룡산 가마터 제작품이다.
장군은 세종실록에서 '장본'으로 기록되어있다.
주로 술병의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볼 때마다 독특한 모양의 그릇이라고 생각해왔다.
앞에서 말했던 박지기법으로 모란무늬를 새겼다.
모란을 간단한 모양으로 표현했는데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사진은 잘렸지만 옆에는 파도 물고기무늬병이다.
파도보다는 물고기비늘무늬(漁鱗紋)으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리는 무늬이다.
연꽃무늬 대접은
안 쪽의 하얀 흙과 검은 흙의 대비가
연꽃무늬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 같다.
국화무늬 접시는 접시의 내면을 인화기법으로 장식했다.
인화기법으로 장식된 국화꽃무늬가 빼곡하긴 하지만
대비 때문에 답답해 보이진 않는다.
백자는 순백색의 태토(바탕흙) 위에 투명한 유약을 씌워서 구운 자기이다.
청화백자는 백자 위에 코발트 안료(푸른색)로 무늬를 장식하고 유약을 입혀 구웠다.
무늬를 장식할 때 쓰는 코발트 안료는 당시 중국을 통해 수입되었는데
이것을 '회회청'이라고도 불렀다.
벡자는 고려시대부터 청자와 함께 만들어져 온 자기이다.
14세기부터 성행하기 시작했고 조선 초기부터 백자의 생산과 관리가 이루어졌다.
경기도 광주요에서 시작되어 지방으로 확산된다.
청화백자는 중국 명나라로부터 14세기 말엽에 전래되지만 생산한 것은 15세기 중엽 부터다.
처음에는 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점차 조선의 독자적인 특징을 갖추게 된다.
달항아리는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어 한밤 중에 뜬 보름달같아 보였다.
완벽한 대칭은 아니지만 부드러운 곡선 때문에 안정감있어 보인다.
우윳빛에 가까운 흰색이 은은하게 빛이 난다.
각각 다른 모양, 크기이다.
하지만 색이 너무 예쁘다.
그릇에 새겨진 '천', '지' , '현' , '황'이라는 글자는 왕실 소용품을 보관하던 창고라는 견해와
관요의 제작집단이나 제작순번, 관요의 운영을 관리하던 관리의 서명 등과 관련된 운영체계를
의미하는 표시라는 견해가 있다.
원통형의 필통으로 투각 문양에 청화를 입혔다.
불로초, 사슴 등을 청화로 채색해서 장식했다.
둘 다 항아리 입구에 구름무늬가 둘러싸인 장식이 있다.
뒤에 있는 항아리는 '무신 경수궁'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9세기 때 만들어졌고 당시 유행하던 화조도를 기반으로 무늬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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