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드센스>
국립중앙박물관 고대전시실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코로나가 유행한 이 후 오랜만에 들렀다.
이곳저곳 바뀐 곳이 많다고 해서 기대가 된다.
서울역에서 4호선 신용산으로 가는 방향으로 타는 지하철을 탄다.
신용산역의 다음역인 이촌역에서 하차한다.
마지막으로 2번 출구와 연결된 박물관 나들길을 통하면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한다.
1970년 후반 이 전의 고고학계에서는
모비우스 가설이 정설처럼 학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1978년 한국의 연천 전곡리에서 어느 미군에 의해
발견된 놀라운 물건이 학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그것이 연천 전곡리 출토 주먹도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첫 번째로 볼 수 있는 유물이다.
다른 말로는 아슐리안형 도끼라고도 한다.
프랑스의 생 아슐이라는 동굴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곳의 지명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은 양면핵석기인데 양면을 가공해서 만든 도구이기 때문이다.
연천 전곡리 출토 주먹도끼는 당시 고고학계를 지배하던
모비우스 가설이 폐지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유물이다.
모비우스는 주먹도끼 문화권과 찍개 문화권으로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구분했다.
유럽과 아프리카 주먹도끼 문화권, 동아시아는 찍개 문화권으로 분류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연천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었으며
이 후에도 단양 금굴 등 다른 지역에서도 주먹도끼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거의 이 가설은 거의 폐지에 이르게 된다.
농경문 청동기는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
고대의 농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중요한 유물이다.
비록 파손되었지만 고대의 모습을 일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
농경문 청동기는 고물상으로 부터 구입한 유물이기에 자세한 출토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청동기의 일부가 파손되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선사시대 때 농경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앞면에는 나무 끝에 새가 앉아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솟대를 떠올리게 한다.
고대인들에게 새는 풍요와 안녕을 가져다 주는 존재인 동시에
땅과 하늘을 잇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뒷면에는 밭을 갈고 있는 남성이 새겨져 있는데
이 남성은 벌거벗은 채로 밭을 갈고 있다.
밭을 갈고 있는 남성의 옆에는 가을에 수확한 곡물을
항아리에 담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봄에서 가을까지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여준다.
농경문 청동기는 제례에 쓰인 의기일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또한 청동으로 의기류가 제작되었던 시기인
기원전 5~4세기경으로 추측되어진다.
그 이유는 이것과 유사한 것이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등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 지역은 방패형 청동기가 발견된 곳이다.
기원전 5~4세기는 우리나라에서 청동기가 토착화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예로 비파형 동검에서 변화한 세형동검이 있다.
그리고 청동은 주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귀한 금속이었다.
그래서 지도자의 상징물이나 의기로 쓰였는데
이것은 그 당시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조선의 지표유물에는 비파형동검, 북방식(탁자식), 미송리식 토기가 있다.
이들은 모두 한국사를 공부했다면 한 번은 책에서 접해보았을 유물들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미송리식 토기를 직접 확인해보자.
미송리식 토기 고조선의 영역을 알 수 있는 지표유물 중 하나이다.
의주 미송리(북한)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미송리식 토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미송리식 토기와 더불어 북방식 고인돌, 비파형 동검도 고조선의 지표로 삼는 유물에 포함된다.
토기는 주로 갈색계열의 색을 띄고 몸체에는 작은 손잡이가 있다.
몸체는 둥글고 입구가 올라가면서 점점 넓어지는 형태이다.
토기의 입구와 몸체에는 가느다란 줄무늬가 새겨져 있다.
1916년에 발굴된 평양 석암리 9호 무덤 출토 금제 허리띠 고리이다.
중국 한(漢)의 식민지였던 낙랑군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추진한 발굴을 통해서 발견되었다.
관학자였던 세키노 타다시에 의해 발견되었다.
허리띠는 순금으로 만들어졌으며
정교한 용 표현이 눈에 가장 띈다.
중앙에 큰 용이 있고 그 주변으로 작은 용들이 있는데
누금기법을 이용해 금 알갱이를 하나하나 이어붙였다.
현재에도 힘든 기술인데 그 옛날에
저런 정교한 기술이 있었던 걸 보니 봐도봐도 신기하다.
중간중간에 터키석이 박혀있다.
표면에 모두 41개를 박았는데 7개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터키석은 푸른색의 보석인데 오늘날에도 많이 쓰이는 원석이다.
이 아름다운 허리띠고리와 거의 흡사한 것이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에서 하나가 더 발견되었다.
소재와 형태, 제작기법 등이 유사하다고 한다.
평양 석암리 9호분 도면
금제 허리띠 고리가 발견된 평양 석암리 9호분 도면이다.
이 금제 허리띠 고리는 아직 중원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고
중국의 변방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고 있다.
당시 대제국이었던 한(漢)의 황제가 변방의 이민족의 우두머리에게
기념품처럼 보내준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봉수형 유리병이다.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봉수(鳳首)'라는 이름이 붙었다.
황남대총은 경주 대릉원에 있으며
대릉원 내에 있는 고분 중 가장 크다.
남분과 북분이 붙어있는데 남분에는 남성피장자가
북분에서는 '부인대(夫人帶)'가 새겨진 은제허리띠의 장식이 발견되어
여성피장자가 묻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남분의 피장자가 누군지에 대해 여러가지 설들이 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서술하겠다.
봉수형 유리병은 고대 그리스의 항아리인 '오이노코에'의 모양과 흡사하다.
특히 사산왕조 페르시아에서 유행한 모양이다.
당시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영토였던
시리아에서 발견되는 4~5세기의 것들과 유사하다고 한다.
또한 병의 목 부분에는 색유리를 길게 늘여뜨려 붙였는데
이것은 초기 비잔틴(동로마)제국에서 유행하던 기법이다.
봉수형 유리병은그 당시에 아주 귀한 물건으로 취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깨진 손잡이 부분이 금실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각 남분과 북분에서 출토된 유리그릇이다.
봉수형 유리병처럼 생긴 것 또한 이국적이어서
그 당시 신라의 국제교류에 대해 어느정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경주 보문동 부부총에서 출토된 금귀걸이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발견되었다.
누금세공기법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귀걸이이다.
굴식돌방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거북이 등껍질모양으로 구획을 나누고
그 안을 꽃잎모양으로 장식했다.
아래의 드리개는 나뭇잎모양장식들을 꼬아서 연결했으며
드리개 맨 아래는 하트모양으로 마무리했다.
다시봐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귀걸이이다.
두 개의 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 있는 방이다.
사유의 방에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미디어아트가 펼쳐지는데
끈임없는 물질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을 상징한다고 한다.
까만 천장에는 무수한 별들을 표현해서 더욱 신비감이 있었다!
(사진이 많이 부족한데 핸드폰 배터리가 다 닳았기 때문에 제대로 찍기가 힘들었다.
가지고 간 보조배터리는 왜 샀는지 모를 정도로 기능이 형편없었다. )
반가사유상은 싯다르타가 왕자였던 시절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깊게 생각하던 모습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싯다르타의 모습으로 인식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미륵보살상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반가사유상은
대부분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두 점 다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데
결가부좌는 쉽게 말하면 한 쪽 다리를 꼬고있는 자세다.
왼쪽에 있는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제작되었고
오른쪽에 있는 반가사유상은 7세기 전반에 만들어졌다.
두 점 다 그 당시 최첨단의 기술로 만들어졌으며
그 당시로 치면 세계적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두 점 다 여유있고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 있는 것과 사실적인 옷 주름등이 똑같다.
하지만 오른쪽에 있는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반가사유상은
왼쪽에 있는 것보다 장식성이 절제되어있고 상의를 입지 않은 상태이다.
단순히 전시품을 보기만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도 따라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의 전시 페터 바이벨전처럼
관람객도 점차 전시의 주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최근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다양하고 획기적이고 도전적인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해가는 시대에 맞게 전시도 변한다.
국립중앙박물관_ 고려와 조선의 도자기를 전시한 도자공예관 (0) | 2023.05.28 |
---|---|
국립중앙박물관 투어하기- 고려와 조선의 유물을 다룬 중,근세관 (0) | 2023.05.25 |
대구근대역사관 (0) | 2023.05.08 |
대구 효목동 전시_ 고흐, 향기를 만나다 (0) | 2023.05.05 |
국립대구박물관_어느 수집가의 초대_고려,조선 자기 (0) | 2023.04.2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