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드센스>
청도 적천사에 대해 쓴 이후로
벌써 한 달도 더 지나 글을 쓰게 되었다.
청도 적천사 다음으로 간 곳은
밀양 월연정이다.
밀양 월연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
이태(1483∼1536)가 지은 별장이다.
원래 월영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을 별장으로 지었다.
월연정을 지은 이태는 중종 시기의
기묘사화와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4) 11월 조광조·김정·김식 등 신진사류가
남곤·심정·홍경주 등의 훈구 재상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이다.
조광조를 대표로 한 신진사류는
성리학을 근본으로 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개혁을 실시한다.
그러나 조광조가 실시한 개혁은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그를 등용한 중종은 물론이고
반대파인 훈구세력도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조광조가 실시한 개혁 중 위훈삭제는
이러한 반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게되었다.
그러다가 조광조와 그 일파가 완전히
숙청당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주초위왕(走肖爲王)'사건이다.
훈구 세력의 일부는 임금의 후궁인 자신들의 딸에게 호소한다.
두 후궁들은 자신의 나인을 시켜 밤에 몰래 꿀물을 묻힌 붓으로
나뭇잎에 '주초위왕( 走肖爲王 )'을 새겨넣게 한다.
그 뒤에 임금에게 보여 중종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었고
이것은 결국 조광조와 그 일파들에 대한 숙청이 단행되는
'기묘사화(己卯士禍)'가 발생한다.
이 때 화를 입은 사림파의 문신들을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사람들이 흔히 알고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중종에 의해 일어난 친위쿠데타로 해석한 견해도 있다.
일을 도모했을 때 국왕의 비서기관인
승정원과 아무런 의논이 없었으며
주요대신들을
적법한 절차가 아니며
죄상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조광조와 대립관계에 있던 이들까지도
중종의 행보를 비판하고 조광조의 사사를 애통하게 여겼다.
( 출처 : 진상원, 2009, 〈안처겸 獄事와 정치범 伸寃 관행의 정착〉, 《역사와 경계》 73, 부산경남사학회 )
쌍경당의 처마
'강물과 달의 함께 맑기가 거울과 같다'라는 뜻이다.
주변 경관을 조망하기 좋도록 방과 대청을 개방형으로 꾸몄다.
그리고 사시사철 살 수 있도록 아궁이까지 두었다.
월연대
정자 기능이 두드러지도록 가운데에
방 한 칸을 두고
사방을 대청으로 둘렀다.
월연대에서 바라 본 밀양강의 전경
800년 된 은행나무 명소 청도 적천사 (0) | 2024.12.01 |
---|---|
서울 종로 가볼만한 곳_흥선대원군의 사저, 운현궁 (0) | 2024.05.30 |
조선의 왕과 왕비가 잠든 곳_종묘 (0) | 2024.05.25 |
안동 가볼만 한 곳_ 안동 하회마을 방문후기 (0) | 2024.01.01 |
불교 문화재 답사 후기_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0) | 2023.12.28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