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드센스> 서울 고궁 투어 _ 덕수궁 석조전, 석조전 관람예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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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궁 투어 _ 덕수궁 석조전, 석조전 관람예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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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쓴짤랑이 2023. 5. 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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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궁 투어_ 덕수궁 석조전 

마지막 여행코스인 덕수궁 석조전에 갔다.
마지막 여행코스를 제일 먼저 포스팅하는 이유는 
석조전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했는데 
내용을 다 잊어버릴까 봐 제일 먼저 기록하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포스팅하는 지금도 거의 대부분 잊어버렸다... 

우선은 덕수궁 관람정보석조전 예약정보부터 소개하겠다. 


덕수궁 관람정보

관람시간 : 09:00~20:00
(야간개장 시 21:00까지 운영한다.)
관람료 : 일반 1,000원
 단체 800원 
 

덕수궁 석조전 관람예약하는 방법

덕수궁 석조전 예약하러가기

https://www.deoksugung.go.kr/schedule/list?scheduleid=SB

 

문화재청 덕수궁

 

www.deoksugung.go.kr

 

덕수궁 홈페이지의 예약신청 페이지로 들어간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관람을 클릭한다.

달력에 원하는 날짜를 클릭하고 원하는 시간대 옆에 있는 신청하기를 클릭하면 

예약페이지로 넘어간다. 

본인인증을 한 뒤에 비밀번호입력, 개인정보제공동의에 체크한 뒤

신청하기를 누르면 예약이 완료된다. 

별도의 결제는 없으며 예약완료 문자가 온다. 

예약이 완료된 후 예약확인을 하면 

예약이 완료된 것을 볼 수 있다. 

 

현장예약은 없고 인터넷 사전 예약만 가능하다.
예약은 관람일 일주일 전부터 오전 10부터 예약이 가능하다.
해설을 들으면서 해설사의 인솔에 따라서 관람하는데 
일반 해설은 45분, 심화 해설은 70분 정도 걸린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동영상 촬영 금지, 플래시 금지이므로 주의하자. 
 


덕수궁 주요 전각 소개

덕수궁은 조선의 14대 왕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다 돌아온 후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 거처로 삼으면서 궁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후에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경운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경운궁은 덕수궁의 옛 이름이다. 

1907년 헤이그특사파견으로 고종이 강제퇴위하면서

규모가 축소되고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덕수궁 광명문

덕수궁 광명문

고종이 머물던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할 때 그 관이 이 문을 통해 나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덕수궁이 파괴되면서 중화문의 서남쪽으로 옮겨졌었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 복원되었다.
 

덕수궁 중화전

덕수궁 중화전

아관파천(1896년) 이 후 고종은 다시 덕수궁으로 돌아온다. 
이 때 정전으로 쓰였던 곳이 즉조당이라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즉조당은 정전으로 쓰기에 좁았다. 
그래서 1902년 새로운 건물을 지었는데 그 건물이 바로 중화전이다. 
원래는 2층의 중층건물이었는데 190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지금의 형태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경복궁근정전처럼 품계석이 좌우로 서 있다. 

 

덕수궁 석어당

덕수궁 석어당 

덕수궁 내에서 유일한 중층건물이다. 
임진왜란 중 피난갔다가 다시 돌아온 선조가 이 곳 석어당에서 지냈으며 
1608년 이 곳에서 승하했다고 한다. 
이 후에도 인목대비가 이 곳에 유폐되었으며 
인조반정광해군의 죄를 물었던 곳도 이 곳이었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단청을 칠하지 않았다. 
 
사진은 밝게 찍혔는데 짙은 고동색과 흰색 창문의 대비가 선명하다. 
날씨가 좋아서 건물자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아서 소박하게 보인다. 
군더더기 없이 고요해보였다. 

 

덕수궁 정관헌

덕수궁 정관헌

정관헌은 조선 왕의 역대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다. 
석조전과 더불어 특이한 양식이다. 
동서양의 양식이 모두 합해진 독특한 건물이다.
청나라 서태후 때 지어진 이화원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서태후의 이화원 규모가 상상초월할 정도로 크다.
사치가 심했다고 하는데 이화원을 보며 실감했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드디어 석조전에 왔다!
11시 타임에 예약을 했으며 20분 남겨두고 이미 석조전 앞으로 가있었다. 
석조전은 대표적인 유럽풍 건물이며 신고전주의의 양식을 따랐다. 
신고전주의는 로코코와 후기 바로크에 반발하고 고전과 고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함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나타난 예술 양식을 말한다. 
신고전주의의 특징은 엄격한 비율 고수, 표현의 명확성, 입체적인 형태의 완성 등이 있다.  

덕수궁 석조전 외관

총 3계층으로 되어있는데 그 중 지층(지하)은 하인들이 머물렀던 곳이고 
지금은 작은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접견실 대식당, 침실서재를 갖추고 내부의 가구는
영국의 메이플사의 것으로 채웠다. 
(메이플사는 도산했음)
1910년 준공 당시의 가구들과 자료들을 보고 재현한 가구가 함께 배치되어 있다. 
안내판에 붉게 칠해진 글씨가 준공 당시의 가구이다. 
 
석조전은 본래 외교활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영친왕의 임시 숙소로 쓰이다가 
1930년 대 미술관으로 바뀌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쓰였다. 
그 후에도 박물관이나 전시관으로 쓰이다가 2014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덕수궁 석조전 분수대

석조전 분수대 

석조전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 앞에는 해시계가 설치되어 있다. 

석조전 중앙홀 탁자

석조전 중앙홀 탁자

해설이 시작되기 전 서있는 곳으로 대리석 탁자가 놓여져 있다. 
중앙홀의 탁자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보관하던 것을 다시 가져온 것이다.

만져볼 순 없지만 그 당시의 가구를 실제로 볼 수있다는 것이 감격스럽다.  

 

접견실

접견실

중앙홀에서 접견실을 바라보면 정면에 커다란 전신거울이 보인다.  

접견실 벽에는 조선 왕실의 무늬인 오얏꽃무늬가 있으며 석조전 내에서 가장 화려한 방이다. 

오얏꽃, 태극, 무궁화무늬가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무늬로 사용되었다. 

또한 접견실은 해방 후 미소공동위원회의 회의장소로 쓰인 곳이기도 하다. 

황제와 황후의 침실

황제와 황후의 침실

황제와 황후의 침실이다. 

황제의 침실은 황금색, 황후의 침실은 자주색이다. 

침실에 놓여진 가구는 각각 영어로 

'EMPEROR'S BEDROOM' 과 'EMPRESS'S BEDROOM'이라는

표시가 남아있어 재현이 가능했다고 한다. 

침실 뿐만 아니라 황제 서재, 황후 거실에 놓인 가구들도

표시가 있어 문구가 찍혀있다고 한다.  

 

황후의 침실은 원래 순원황귀비를 위해 설계된 방이지만 

준공 직 후 별세했기 때문에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황제의 서재

황제의 서재

석조전 내에서 준공 당시의 가구들이 제일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대식당

대식당

행사 후 만찬을 즐기던 공간으로 당시 조선 왕실에서도

서양식 코스 요리가 제공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자리의 배치는 서열에 따라 배치된다고 한다.  

주인석을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 영미식과 유럽식이 나뉜다고 한다. 

영미식은 주인석을 북쪽으로, 유럽식은 주인석을 중앙에 둔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과 가까울수록 서열이 높다고 한다. 

 

석조전 내부의 모습은 우리나라 근대 개화기의 모습의 한 단편을 본 느낌이다. 

비록 건물이지만 많은 시련에도 꿋꿋하게 버틴 우리 조상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다. 

급격히 변해가는 정세 속에서 세계에 조선을 알리고자 노력했던 모습이 엿보인다. 

(비록 뒷북이긴 했지만.. ) 

 

석조전 관람은 예약하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생긴다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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